국보 : 제221호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63
조선 단종을 폐위한 세조가 즉위한지 10년째 되던해인 1464년 등창(부스럼병)을 얻게 되자 신미대사의 권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에 행차를 하게 되었다. 상원사에 도착한 다음 날 계곡물(오대천)에 몸을 담그던 중
지나던 동자에게 등을 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 밀어 몸이 날아갈 둣이 가벼워지자
기뻐하며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말핟지말라고 하였다. 이에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왕도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며 홀연 듯이 사라졌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동승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자신의 병이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등창 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기뻐하여 궁에 돌아와 화공을 불러 만났던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으나 제대로 그리는 화공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 보겠다고 하여 세조가 그 모습을 설명하자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고 하며 설명도 듣지 않고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곳을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님을 두 번이나 친견한 것이다.
이후 의숙공주와 효녕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을 빌기 위해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66년 상원사에 모셔졌다.
이렇듯 문수보살 감응 설화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문수정토의 오대신앙과 문수화현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후 상원사 낙성식때 세조는 대비 및 효녕대군과 왕세자를 비롯한 문무백관과 함께 행차하였을 때도 자객으로 부터 목숨을
구하게 되어 고양이 석상을 조성하여 생명의 은혜에 보답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문수동자상의 복장은 1984년 7월 19일 문화재 관리국의 주최아래 조사되었으며 총 23점의 복장유물이 확인되었다.
복장유물에는 불사리와 수정 사리병, 불경, 발원문,중창문,다라니가 찍힌 황초복자, 후렴통,비단어의2벌등이 있다.
왕실발원으로 이루어진 복장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복장들보다 다양하게 복장물이 구성되었다.
문수보살은 주로 동자로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문수사리법왕자,문수사라동진 등으로도 부른다. 이렇게 문수가 보살형이 아닌
동자형으로 형상화되고 신안되기 시작한 근거는 710년 보리유지에 의해 한역된 "불설문수사리법보장다라니경"의 남섬부주
동북방에 있는 오대산에 문수사리동자가 유행하여 거주하며 설법하고 있다.라는 내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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