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송광사 (松廣寺)

경주ㅅгㄹ♪ 2010. 12. 21. 19:28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文臣)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 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 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12번지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